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纪念物

金污将军遗迹地

김면장군유적

내용

조선 선조(재위 1567~1608)때의 의병장이면서 학자였던 김면(1541~1593)을 모신 유적이다.

김면은 일찍이 성리학의 대가인 조식을 스승으로 모셨고, 이황의 밑에서 성리학을 공부하였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고령과 거창에서 의병을 모아 적을 물리친 공으로 합천군수가 되고, 의병대장의 칭호를 받았다. 선조 26년(1593)경상북도 병마절도사가 되어 충청,전라도 의병과 함께 적을 격퇴시킬 준비를 하다가 병에 걸려 자신의 죽음을 발표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었다. 왕이 장군의 죽음을 슬퍼하여 병조판서에 명하였고 선조 40년(1607)에 다시 선무공신에 기록되고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저서로는[송암실기]3권이 있다.

관련 유적으로는 그의 생애를 적은 신도비와 도암서당, 도암사당 등이 있다.

介绍

该遗址为朝鲜宣祖(1567~1608在位)时期曾担任过义兵队长并且是著名学者金污(1541~1593)的遗址。金污很早就拜性理学大师曹植为师,在李滉门下学习性理学。宣祖25年(1592年)壬辰倭乱爆发,高灵和居郡聚召集义兵击溃敌人立下汗马功劳,由此升官为陕川郡守,并授予义兵队长称号。在宣祖26年(1593)升任为庆尚北道兵马节度使,在准备与忠清道、全罗道的义兵一起击退敌人时身患重病,留下遗言不要公开自己的死讯后去世。当朝王对于将军的去世深表悲痛,追升为兵曹判书,宣祖40年(1607年)再次记录于宣武功臣录中,并再次追升为吏曹判书。

著作有松庵实纪3册 。

相关遗址有神道碑和道严书院、道严祠堂等,记录着他的一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