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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성풍세효자비

성풍세효자비

기본정보

기본정보-구분,수량,면적,소재지,지정일
구분 [도지정] 문화재자료 제 112 호
수량 1기
면적 343 ㎡
소재지 경북 고령군 다산면 나정리 산33
지정일 1985-08-05

소개

성풍세 효자비는 다산면 나정리에서 성주군 용암면 동락리 가죽정마을로 가는 방향의 우측에 위치하고 있다.
성풍세(成豊世)의 본관은 창녕(昌寧)으로 영의정을 지낸 성석린(成石璘)의 후손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성주 노곡(魯谷)으로 피난을 간 성풍세는 전쟁으로 인해 생활이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낮에는 의병 활동을 하고 저녁에는 어머니를 지극 정성으로 돌보았다. 어머니의 연세 83세 때 도끼로 얼음을 깨어 잉어를 구해 드렸으며 어머니가 한 겨울에 대추를 원하자 눈 속을 헤매어 대추를 구해 드렸다고 한다. 성풍세의 효행에 하늘도 감명하여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상막에 드릴 반찬이 없어 걱정하자 산 꿩이 스스로 날아와 죽었다고 한다.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성풍세의 효행을 칭송하였고 조정에서도 효자로 표창하였다. 마을에서는 1712년(숙종 38) 조정에서 정려를 내렸다. 1768년 마을에서 성풍세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성풍세 효자비를 세웠다.
성풍세 효자비는 귀부 위에 비신을 두고 종형의 연화문과 여의주를 문 쌍룡이 조각된 이수를 얹은 형태이다. 비의 전체 높이는 86cm, 너비는 45cm이다. 비신은 86×44×18cm, 이수는 56×57×23cm, 귀부는 77×127×31cm이다. 비를 보호하기 위해 단칸맞배지붕을 한 비각과 담장을 만들어 놓았다. 비 앞면에‘효자성공휘풍세지비(孝子成公諱豊世之碑)’라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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