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뉴닫기
  • 페이스북으로 공유
  • 트위터로 공유
  • 인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고령향교

고령향교

기본정보

기본정보-구분,수량,면적,소재지,지정일
구분 [도지정] 문화재자료 제 229 호
수량 6동
면적 10,131 ㎡
소재지 경북 고령군 고령읍 향교길 29-18
지정일 1990-08-07

소개

고령향교는 대가야읍의 중심부인 연조리 專대가야궁성지 터에 위치하며, 고령지역의 지방 교육과 향사를 담당하였다. 고령향교는 건립 이후 4차례 정도의 이건을 거쳤다고 한다.
고령향교가 처음 창건된 시기와 위치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1413년(태종 13) 고령 지역에 현감을 파견한 것으로 보아 이때 창건된 것으로 보인다. 건립 위치는『신증동국여지승람』등에는“현 서쪽 2리의 이산(耳山)[주산] 아래”에 위치했다고 한다. 이후‘관백전 우협(官栢田右峽)’으로 1차 이건하였고,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여 향교가 소실되자 향교의 노비가 위패를 주산 아래인 동고(東皐) 후등(後嶝)[지금의 연조리 관음사 뒤편]에 매안하였다고 한다.
난이 진정된 후 그 자리에 향교를 중건하였는데, 이것이 2차 이건이었다. 그 후 1663년(현종 4) 현감 조봉원이 중수하였는데, 이때 대성전의 현판을 다시 쓰고 1665년 7월에는 송시열로부터 중수기를 받았다고 한다.
이후 고령향교의 경영이 오래되었고, 교지가 불길하여 묘우에 변괴가 빈번하다는 사족들의 이건 건의로 1702년 3차로 현감 구문유(具文游)가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그 후에도 여러 차례 크고 작은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대성전과 명륜당은 1700년대 초의 골격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명륜당은 일제강점기 때 학교 건물로 사용한 바 있어 기둥의 일부가 훼손된 흔적이 있다.
고령향교의 공간 구성은 타향교와 마찬가지로 제향 공간, 강학 공간, 지원 공간 등으로 구분된다. 제향 공간은 대성전, 동·서무, 빈흥재, 내삼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강학 공간은 명륜당과 외삼문으로 이루어진다. 또 지원 공간으로 관리사와 화장실이 있다. 특징은 제향 공간 내에 빈흥재라는 건물을 두고 있다는 점과 동·서무를 두고 동·서재가 없다는 점이다.
이는 모두 1900년대 이후에 나타난 현상이며, 그 이전에는 고을의 등급인 현에 걸맞게 소설위로 동·서무가 없으며, 동·서재가 갖추어진 전통적인 공간 구성 양식을 갖추고 있었다.
입지는 대가야읍 뒤편의 경사가 약간 높은 터에 남서향하여 건물을 앉혀 놓았고, 대지를 2단으로 정지하여 대성전을 뒤쪽에 배치하고 같은 축선 상에 명륜당을 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현재는 교육기관으로서의 기능은 상실하고 성현들에 대한 제향 기능만을 담당한다.
VR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