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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장육당

장육당

기본정보

기본정보-구분,수량,면적,소재지,지정일
구분 [도지정] 유형문화재 제 501 호
수량 1동
면적 518 ㎡
소재지 경북 고령군 다산면 상곡5길 7-22
지정일 2017.05.15

소개

장육당은 조선 후기의 학자 이윤(李玧)이 거처하던 사랑채이다. 이윤의 자는 여온(汝溫), 호(號)는 장육당(藏六堂)이다. 문음으로 통덕랑(通德郞)을 받았다.
참의이지화(李之華)의 아들로 손처눌(孫處訥)의 문하에서 수업하였으며, 벼슬은 하지않았으나 부윤 윤리(尹理)·김수남(金粹南) 등이 그의 문하에서 나왔다.
후손 기로(基魯) 소제(所製)의 행장(行狀)과 조긍섭(曺兢燮) 소찬(所撰)의 묘문(墓文)이 있다.
건물의 명칭이 장육당인데에는 그의 호를 따온 까닭도 있겠지만, 이윤이 당시외가의 일로 벼슬에 나가지 못하게 되자 드러내지 않고 거북이 같이 6가지를 감추고 있다는 뜻에서 육당이라 칭하게 되었다. 또 그가 바깥출입을 하지 않았다고하여 감출‘장(藏)’자를 썼다고도 한다.
1671년에 건립된 장육당은 창건 당시 이윤의 어머니가 성종의 아홉째 아들인 이성군의 5세손인 이구의 딸이었기 때문에 일반 사가(私家)에서는 달 수 없는 부연을 달았다. 그 후 1968년 중수하였다. 기문은 학연거사(學淵居士) 박진구(朴震) 소찬(所撰)이며 성순영(成純永)이 찬(撰)한 중수기(重修記)가 있다.
건물의 전체 구조는 정면 5칸, 측면 3칸의‘T’자형 목조와가 건물이다. 장육당은 완만하게 경사를 이루는 지형을 그대로 두고 그 위에 평탄한 기단을 조성하였다. 자연석 기단 위에 4칸의 방과 측칸으로 이어진 1칸의 누마루가 후면부를 이루며 가로 세로 각각 2칸인 정방형 마루가 전면부를 구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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