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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고령 사부동과 기산동 요지

고령 사부동과 기산동 요지

기본정보

기본정보-구분,수량,면적,소재지,지정일
구분 [국가지정] 사적 제 510 호
면적 10,977 ㎡
소재지 경북 고령군 성산면 사부리 산16
지정일 2011-07-28

소개

과거 이 가마터는 1963년 1월경‘성산사부동도요지’(사적 제71호:제1·2구역), ‘성산기산동도요지’(사적 제72호:제3구역)로 지정·관리되어 왔으나 2011년 7월 28일에 인접해 있고 유사한 성격의 두 사적을 통합하여‘고령 사부동과 기산동 요지’(사적 제510호)로 변경·지정하였다.

가마터는 3개소로 나뉘어져 있는데, 사부1리 마을길이 끝나는 지점에 북편으로 접한 남사면 일대에 제1구역, 사부1리 마을의 중간지점에서 서쪽에 접한 동사면 일대에 제2구역, 사부곡 저수지의 동편으로 접한 구릉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린 사면 일대에 제3구역이 각각 위치하고 있다. 과거 가마터 일대에는 10여기의 가마가 확인된 것으로 알져져 있으나, 지금은 수목이 우거지고 낙엽과 토사 등으로 덮여 잘 보이지 않는다. 이 중 제2구역은 보존·정비의 목적으로 2010년 5월에 시굴조사가 이루어진바 있는데, 등고선 진행방향과 직교상으로 분청자가마 1기가 확인되었다. 규모는 너비가 2m이고, 유존현황과 주변 재층, 붉게 그을린 범위, 폐기장 등을 고려하여 전체 길이는 30m 정도로 추정되었다. 확인되는 유물은 주로 가마 벽체편과 갑발, 갓모, 도침, 포개구이용 태토빚음받침 등 요도구를 비롯하여 다종다양한 분청자와 백자, 구슬도침, 어망추 등이 있다.

대표적인 생산품인 분청자는 대접과 접시가 주를 이루며 고족배, 병, 잔, 뚜껑 등도 확인된다. 장식기법은 흑·백 상감, 인화, 귀얄기법이 사용되었으며, 그 문양은 선문, 원문, 국화문, 승렴문, 초문, 연화문, 연판문, 육원문, 학문, 나비문 등 다양하다. 한편, 분청자에는 흑·백 상감으로‘사(司)’, ‘선(膳)’, ‘대(大)’, ‘상(上)’, ‘신(申)’, ‘십(十)’자 등의 명문을 장식한 것도 있다. 특히 ‘사(司)’, ‘선(膳)’명은 당시 임금의 수라상 등을 관장하던‘사선서(司膳署)’와 관련된 것이 확실시된다. 백자류는 제2·3구역에서 확인되며 대부분 접시이고, 내화토빚음받침을 받쳐 포개구었다. 갑발은 전역에서 확인되며, 표면에‘V’, ‘X’등 예새부호가 확인된다.

한편, 이곳은 14세기 말부터 15세기에 걸쳐 양질의 상감청자, 분청자 등을 만들었던 가마터로 왕실에 납품할 정도로 품질이 우수하였고 고급 백자도 함께 생산하였다. 『세종실록지리지』(1424년)에 실린 전국 324개 가마 중 가장 좋은 상품의 자기를 만들기로 이름난 곳의 하나인 고령‘예현리자기소(曳峴里磁器所)’가 이곳으로 비정된다. 또한 ‘고령인수부(高靈仁壽府)’, ‘고령장흥고(高靈長興庫)’라고 새긴 분청자를 만들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출토유물을 통해 조업의 중심시기를 살펴보면, 제1구역은 1450년대 전후, 제2구역은 1420년대 전후, 제3구역은 1450년대 전후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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